전북특별자치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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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 전북특별자치도는 삼한중 마한국의 중심지로서 마한국 총54개 부족국가 중 15개가 위치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마한국과 병합한 백제에 속하게 되었다.
  • 백제가 지방에 정방제를 설치하여 통치할때 그 중 중방(고섭성-고부지방)이 본 도의 중심지였다.

통일신라시대

  • 660년(백제 의자왕20년)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망하게 됨에 따라 당나라의(웅진도독부 설치) 통치를 받다가
  • 676년(신라 문무왕 16년)당나라가 쫓겨 나면서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 685년 전국에 9주 5소경을 둘 때 본도에는 완산주(현 전주)와 남원경(현 남원)을 두었다.
  • 892년 (진성여왕 6년) 견훤이 후백제를 세웠을 때 후백제의 중심지역으로서 50여년간 존속하며 통치를 당하다가 936년 후백제 신검(神劍)대에 고려(태조 왕건)에 귀속되었다.
  • 후백제가 900년부터 고려에 귀속되기까지 완산주(현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전라도 일대를 통치하였다.

고려시대

  • 996년(성종 14년)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본 도는 강남도(江南道)라 칭하고 4주(전주-전주지방, 영주-고부지방, 순주-순창지방, 마주-옥구지방)를 설치하였다.
  • 1018년(현종 9년)에 전국을 5도 양계(兩界)로 크게 나누면서 강남도(전북)와 해양도(전남)를 합하여 전라도라 칭하고 전주에 안찰사를 두었다.

조선시대

  • 1413년(태종 13년) 전국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하면서 전라도는 전주에 관찰사를 두고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와 제주도에 걸친 1부(府) 4목(牧), 4도호부(都護府), 12군(郡), 31현(縣)의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였다

갑오경장시대

  • 1896년(고종 33년) 전국을 13도로 나누면서 전라도는 전라남·북도로 분리되고 전라북도는 26군으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이후

  • 1910년 전국을 13도 12부 317군으로 개편할 때 옥구군 일원이 군산부로 되면서 1부 27군이 되고 1914년 행정구역인 부·군을 통폐합하여 1부(군산)14군(완주·익산·옥구·김제·정읍·고창·남원·순창·임실·장수·진안·무주·부안·금산군)으로 되었다가 1935년에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완주군과 분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 1949년 전주,군산,이리부가 각각 시로 승격되고,1963년에는 금산군이 충남으로, 전남 위도면이 전북으로 편입되는 등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 1981년 정주읍,남원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고, 1989년에는 김제읍이 시로 승격되었고 전주시에는 완산구, 덕진구가 설치되었다.
  • 1995년 도농(都農)복합형태의 시 설치로 옥구·정읍·남원·김제·익산군과 군산·정주·남원·김제·이리시가 각각 통합되어 군산시,정읍시,남원시,김제시,익산시로 변경되는 등 행정구역 개편을 거듭하여 현재는 6시 8군의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북특별
자치도의 시작

  • 2022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됨으로써, 2024년 1월 18일부터 종전의 ‘전라북도’는 ‘전북특별자치도’로서의 새로운 법적 지위와 명칭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로 출범하였다.

전라도 천년

전라도, 천년의 역사
  •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 14년인 995년에 지금의 전북 일원을 강남도라 하고, 전남과 광주 일원을 해양도라 불렀습니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강남도와 해양도 두 도를 합치고, 당시 큰 도시였던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2018년은 전라도가 태어난 지 천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 조선 8도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전라도는 이후 영역이나 이름이 바뀐 다른 시·도와는 달리 큰 변화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견고한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라도, 백성과 나라를 지키다
  •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는 전라도가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라도는 나라가 위기에 있을때마다 국난을 극복하고 백성과 나라를 지켰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의병활동이 일어난 곳도 전라도였습니다. 1908년 전국 의병 교전 중 1/4이, 그리고 1909년의 전국 의병 교전 중 절반이 전라도에서 일어났습니다. 전라도 의병 투쟁은 대표적인 민족 구국운동으로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 16세기 이후 전라도는 국가 재정의 30% 이상을 담당했고, 17세기에 조선 팔도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습니다. 서남해안의 바다를 무대로 수산업과 조선업, 해운업도 발달해 당시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전라도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음식과 문화·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김제평야 등 기름진 농토가 많아 한반도를 풍요롭게 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전라도, 시대정신을 이끌다
  • 전라도는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시대로 이끈 개혁의 땅이었습니다.
  • 16세기 전주 출신 정여립은 천하는 임금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하는 대동사상을 통해 전제왕권 시대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전파했습니다.
  • 또한 1860년‘사람이 곧 하늘’이라는‘인내천’사상을 토대로 평등과 자주를 주장한 동학은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습니다.
  •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최초의 아래로 부터의 반봉건, 반외세 민족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전라도,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다
  • 전라도는 넉넉한 경제력과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서 고려청자, 판소리, 남종화, 가사문학 등 문화·예술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중국, 일본에서 천하제일로 손꼽았던 고려청자는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이 유명했습니다.
  • 또한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고창 출신의 판소리 대가인 신재효 등 현재 전승되고 있는 대부분의 판소리가 전북에서 출발하였으며 현존 최고의 가요인 정읍사와 가사문학의 효시인 정극인의 상춘곡을 낳은 문향으로 유명합니다.
  • 김제 출신의 강암 송성용 선생과 고창 출신의 석전 황욱 선생은 한국서예의 대가로 손꼽힙니다.
  • 전라도는 16세기 조선 사화의 여파로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사림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 부서/이름 정책기획관
  • 전화번호 063-280-3912
  • 최종수정일 :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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