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글로벌 네비게이션
사이트맵
전북도의회
아름다운 山河 웅비하는 생명의 삶터 천년전북!
Language
English
中國語
日本語
알림창 열림
통합검색

 전라북도

국가상징 바로가기천년을 품다, 새천년을 날다 전라도천년


전북소개

전라도천년

처음화면 > 전북소개 > 전라도천년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전라도, 천년의 역사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 14년인 995년에 지금의 전북 일원을 강남도라 하고, 전남과 광주 일원을 해양도라 불렀습니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강남도와 해양도 두 도를 합치고, 당시 큰 도시였던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2018년은 전라도가 태어난 지 천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조선 8도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전라도는 이후 영역이나 이름이 바뀐 다른 시·도와는 달리 큰 변화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견고한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기준 전라도 1018년부터 1000년, 경상도 1314년부터 704년, 충청도 1356년부터 662년, 강원도 1395년부터 623년, 평안도 1413년부터 605년, 경기도 1414년부터 604년, 황해도 1417년부터 601년, 함경도 1509년부터 509년

전라도, 백성과 나라를 지키다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는 전라도가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라도는 나라가 위기에 있을때마다 국난을 극복하고 백성과 나라를 지켰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의병활동이 일어난 곳도 전라도였습니다. 1908년 전국 의병 교전 중 1/4이, 그리고 1909년의 전국 의병 교전 중 절반이 전라도에서 일어났습니다. 전라도 의병 투쟁은 대표적인 민족 구국운동으로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6세기 이후 전라도는 국가 재정의 30% 이상을 담당했고, 17세기에 조선 팔도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습니다. 서남해안의 바다를 무대로 수산업과 조선업, 해운업도 발달해 당시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전라도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음식과 문화·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전라북도는 김제평야 등 기름진 농토가 많아 한반도를 풍요롭게 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전라도, 시대정신을 이끌다

전라도는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시대로 이끈 개혁의 땅이었습니다.
16세기 전주 출신 정여립은 천하는 임금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하는 대동사상을 통해 전제왕권 시대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전파했습니다. 또한 1860년‘사람이 곧 하늘’이라는‘인내천’사상을 토대로 평등과 자주를 주장한 동학은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습니다.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최초의 아래로 부터의 반봉건, 반외세 민족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전라도,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다

전라도는 넉넉한 경제력과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서 고려청자, 판소리, 남종화, 가사문학 등 문화·예술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중국, 일본에서 천하제일로 손꼽았던 고려청자는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이 유명했습니다. 또한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고창 출신의 판소리 대가인 신재효 등 현재 전승되고 있는 대부분의 판소리가 전북에서 출발하였으며 현존 최고의 가요인 정읍사와 가사문학의 효시인 정극인의 상춘곡을 낳은 문향으로 유명합니다. 김제 출신의 강암 송성용 선생과 고창 출신의 석전 황욱 선생은 한국서예의 대가로 손꼽힙니다. 전라도는 16세기 조선 사화의 여파로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사림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컨텐츠 담당자

  • 담당부서 :
  • 담당자 :
  • 전화번호 :
만족도조사

만족도평가

현재 보시고 계시는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