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푸른 용의 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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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024-01-10
  • 기고자김무철
  • 담당부서대변인

* 2024년 1월 10일(수)자 전라일보 제13면에 게재된 김무철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의 기고문 전문입니다.

 

신명나는 푸른 용의 해를 기대한다.

 

김무철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조명받고 있다. 우울증 환자의 컨디션이 가장 좋지 않은 시간은 아침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감정은 외부 자극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로 감성 시스템이 가장 솔직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감성 노동 속에서 살아간다. 감성 노동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란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감성 노동으로, 감성 에너지가 충전이 아닌 방전, 사용 상태로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신의학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첫 느낌, 신난다. 스스로가 근사하다. 멋지다.’라는 느낌은 이성적 콘텐츠가 아닌 감성 시스템이 제공하는 고품질의 에너지 콘텐츠라고 한다. 근사함이 사라진 마음은 충전될 수 없고, 계속 방전만 되기에 결국은 감성 시스템을 소진 상태로 만든다고 하니 내 마음을 챙겨보도록 하자.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고, 모두 방전된 상태로 뇌의 에너지가 다 타버렸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소진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먼저 의욕과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피로사회, 감정노동, 정서적 허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여백이 필요하다.

 

고대에 표현적 예술로 시(word)는 음악(rhythm), 춤(movement)과 함께 미분화된 상태로 통합되어 있었고, 이를 코레이아(Choreia)라고 한다. 코레이아는 원래 집단춤(군무)을 뜻하는 코로스(koros, 합창)에서 유래된 용어다.

 

코레이아는 원시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원시 종교의 기본 형태는 자연신의 메시지(message)를 무당(priest)이 전달받아 다시 대중(crowd)에게 전해주는 방식으로, 이때 무당은 신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인간의 생각과 관습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당은 도취 된 정신 심리상태(insane)로 의식을 진행하게 된다. 또 일반 대중들이 메시지를 전달받을 때 역시 신들림(enthusiasm)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을 이 상태로 이끌어주는 것이 코레이아이다. 오늘날 신들림(enthusiasm)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데, 먼저 종교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고대의 의미 그대로 광신도, 광신으로 사용된다. 또 예술적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는데, 이때는 영감(inspiration)의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영감보다는 신명(神明)에 더 가깝다고 주장함에 동의한다.

 

한국예술의 기본정신에서 신명(神明)이란 신지핌(신내림) 순간의 정신 심리상태를 말한다. 신지핌의 전율이 정점을 향하게 되면 춤과 노래로서 신지핌을 받는 기쁨과 그 날뜀으로 신명으로 이끈다. 바로 신바람 난다, 흥이 난다 라고 말하는 환희의 순간이다.

 

신명, 즉 흥은 우리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동기를 부여한다. 또한 흥은 춤추는 사람과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관객이 춤을 보고 저절로 나오는 추임새나 어깨가 들썩거림은 흥의 절정에 이른 표현이다. 흥은 일종의 춤을 일으키는 원동력이고 동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혼이 깃들인 춤사위로 심연(深淵)에서 흥을 끌어낼 때 비로소 생명력이 있는 춤이 된다고 한다.

 

한 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와 함께 희망에 부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 역시 먼저 나를 만났다. 그랬더니 글을 쓰는 이 순간 필자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감성 충전 시스템이 망가진 느낌으로 살짝 걱정이다. 어쨌든 올해는 여행으로 나를 자주 만나 볼란다.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이러한 각오가 감정을 어루만져서 위로해주는 것이라면, 현대적 표현으로 영혼을 정화하는 것 일 게다. 그러한 정화를 그리스인들은 카타르시스라 칭했는데, 그것은 그리스인들이 예술과 관련해서 매우 일찍부터 적용한 용어다. 이는 신명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신명과 신바람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신과 신바람을 불러낼 수 있는 각자의 돌파구가 필요하다. 신명은 급하거나 빠르지 않다. 차분히 사색하고 자신을 지켜 보는 시간에서 발화된다. 멈춤과 기다림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과 마주했을 때 긍정에너지가 쌓여 비로소 신명으로 나를 이끌 것이다. 신명, 신바람 나는 한해를 기대해 본다. 올 한해도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또 한해를 기운차게 시작하길 바란다. 신명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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