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금만평야와 2023년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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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023-09-08
  • 기고자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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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9월 8일(금)자 전북일보 제10면에 게재된 이남호 전북연구원 원장의 기고문 전문입니다.

 

1592년 금만평야와 2023년 새만금

 

이남호 전북연구원 원장

 

국가군저개고호남(國家軍儲皆靠湖南)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로,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하였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라도는 임진왜란을 이겨낼 마지막 보루였다.

 

해상 보급로가 막힌 왜군은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조선의 본향인 전주를 치기로 마음을 먹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양에 주둔하던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전주성을 점령하라고 지시한다. 왜군은 육상과 해상의 연합으로 총공격을 감행하나 웅치(전주와 진안 사이)와 이치(완주와 금산 사이) 고개에서 대패한다. 전라도 절제사 권율, 동복 현감 황진, 김제 군수 정담 등과 의병이 힘을 모아 왜군을 격파하며 조선의 본향과 곡창지대인 금만평야를 지켰고, 한양과 평양에 주둔하던 왜군의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웅치·이치전투가 조선에서 왜군을 몰아낸 기점인 셈이다. 일본인들이 웅치·이치전투를 삼대 대첩으로 꼽는 이유이다.

 

웅치·이치 대첩의 원동력은 관군과 백성이 모은 결사 항전의 힘이었다. 의병장과 의병, 칼과 창을 직접 들지 않았으나 의병을 도우며 전쟁에 함께 한 수많은 백성이 없었다면 관군만으로 승리는 불가능했다. 권율 절제사를 비롯하여 의병장과 백성이 힘을 모았기에 수적 열세에도 왜군을 격파할 수 있었고, 그 힘이 전라도를 넘어 조선을 지켜냈다.

 

동아시아 쌀문명을 대표하는 곡창지대, 동철서염(東鐵西鹽, 동부 산악의 철과 서해안의 소금)으로 염철론(鹽鐵論)의 거점인 전북은 고대문명을 꽃 피운 중심으로 늘 외부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난 백성은 관군과 힘을 모아 적을 물리치며 위기를 극복했다. 결사 항전으로 지켜낸 곡창지대와 동철서염은 백성의 생명이자 국가의 미래였다.

 

새로운 금만평야를 뜻하는 새만금은 전북의 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땅이자 미래이다. 대한민국의 100년 먹거리를 만들겠다며 국가가 주도하여 진행한 국책사업이 새만금이다. 국가와 전북은 30여 년 동안 함께 땅을 메우고, 머리를 맞대 수많은 사업을 실행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왔다. 어떤 사업은 성과가 좋았으나, 어떤 사업은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다. 실패를 경험한 국가와 전북은 머리를 다시 맞대며 성공의 방정식을 찾았고, 이러한 과정이 켜켜이 쌓여 이차전지 메카라는 지금의 새만금을 만들었다.

 

2023년에 마주한 새만금의 위기는 이전과 다르다. 이전처럼 국가와 전북이 함께 문제를 되짚고 고뇌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찾으려는 모습이 없다. 이미 전북에는 주홍글씨가 덧대졌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질 새도 없이, 또는 가릴 마음이 없는 듯 전북은 잼버리 파행의 원흉이 됐고, 이때다 싶었던지 전라도 혐오가 득세하고 있다. 죄를 벌하듯 잼버리 괘씸죄로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전북도는 물러설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국회의원들도 결사 항전하고 있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웅치·이치에 나선 의병장과 의병처럼 이전에 경험치 못한 전북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분연히 떨쳐 일어난 도민이 많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멈추며 전북을 위기로 몰아넣는 정책 결정에 항의, 삭발, 단식으로 맞서고 있다. 삭발과 단식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결사 항전의 자세이다. 이들의 심정으로, 도민 모두가 위기를 극복하려는 결연한 마음과 일상에서의 실천이 필요하다. 1592년 왜군을 격파하고 금만평야를 지켜낸 웅치·이치전투의 의지를 2023년 새만금에 보여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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